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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미로그/독서

23살의 선택, 맨땅에 헤딩하기

by ROHA__ 2010. 9. 8.

 

23살의 선택, 맨땅에 헤딩하기

 

맨땅에 해딩하기

호주는 계획도시이다. 수도는 캔바라, 관광도시 브르스베인, 상업 도시 멜버른, 유명한 문화 도시 시드니 그리고 주거도시 펄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시드니로 가는 것이 좋다. 한국사람들이 많고 이국 도시에서의 풍요로운 문화적 환경을 즐길 수 있다. 만약 전원 도시에서 호주인들과 어울려 살고 싶다면 다소 지루하지만 펄트를 권한다. 한국인도 적고 생활비도 적게든다.

 빠듯한 예산으로 꼭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유학생들에게는 브르스베인을 적극추천한다.

 

한국에서 영어 정복하기

1.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우리말을 쓰지 않는다ㅏ.

2. 우리나라의 일일 연속극과 같은 미국 드라마를 본다. 한 회를 3일 이내에 열 번 이상 본다.

3. 문법책은 원서로 본다. 같은 책을 두 달 내에 세 번 이상 본다.

4. 일요일 아침이면 인사동과 종로에 가서 외국인을 헌팅한다.

5. 영어 동화책을 일주일에 한 권 정도 외운다.

 

인간관계도 자기관리!

시간은 한 번에 10분을 넘기지 않고, 화제가 될 만한 이야기를 던진 후에 대화를 이끌어 나가고는 항상 제일 먼저 일어났다. 이러한 자기 보호식 대인 관계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고, 또 시간을 쓸데없이 뺏기지 않아 좋다. 빡빡한 스케줄을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하루이기에 시간은 황금이라는 명언을 명심해야한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무엇보다 자기관리를 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해외취업, 그 긴 여정의 시작

당신의 시간을 투자하라.

해외 취업의 관건은 정보 수집이다. 우선, 서점에 있는 인턴십 관련 책을 통해 인턴을 구하는 회사들의 정보를 수집한다. 아니면 인터넷을 뒤져 인텁십 전문 사이트를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만약 취업할 분야가 정해진 사람이라면 그 분야의 전문지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더 좋은 방법은, 먼저 가고 싶은 회사를 선정해 각 회사의 사이트를 직접 방문해 보는 것이다. 사이트마다 거의 정해진 단어들을 쓰기 때문에 영어 실력이 부족해 정보를 구하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예로 CAREER란에 INTERNSHIP을 찾는다. 아니면 SEARCH에 들어가 JOB 혹은 CAREER 혹은 INTERNSHIP을 넣어 보면 반드시 그 회사의 구인 정보가 들어있다.

 

여러개의 이력서를 만들다.

'We were very inpressed with you resume'를 받기위하여!

외국인 친구들과 정보 수집 그리고 엄청나게 투자한 시간!

나는 우선 대학 시절의 이야기부터 꺼내기로 했다. 자질구레한 아르바이트 경력까지 모두 적고 나니 이력서는 세장이 훌쩍 넘었다. 여기에다 자기소개서 두 장까지 마치고 나니 모두 다섯 장인 거대한 분량의 이력서가 되어 버렸다.

 그러고 나서 기숙사의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기숙사에 같이 있는 친구들 대부분이 MBA 학생들이었는데, 그들은 다양한 경력들으르 갖고 있었다. 거의 매일 밤 그 친구를 찾아가 이력서를 검토했다. 그렇게 한 결과 2주 만에 두 장으로 줄일 수 있었다. 그 두장의 이력서를 용도별로 다시 정리하여 세 종류로 만들었다. 컨설팅용과 호텔용 그리고 일반 마케팅용이었다.

 각 이력서에는 관련 정보만을 써야한다. 너무나 다양한 경력은 오히려 한 직종에 대한 생명력이 약하다는 의미를 내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양한 경력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선은 그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경력만을 열거하는 것이 유리하다.

 

Cover Letter 역시 지적이고 예의 바르며 튀어야 한다. 특히 예의가 가장 중요하다. 얼마나 형식에 맞게 썼느냐(formal), 얼마나 교육을 잘 받았느냐(well-educated) 하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해외 취업을 앞둔 사람이라면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영국은 먼저 상대방의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 반면 미국의 이력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상세한 정보와 숫자가 들어간 아주 정확한 근거들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어떤 패가 들어오든지 간에 그것을 바탕으로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성공이라는 것을 거머쥘 수 있다.

 기회란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만약 인생을 살면서 그러한 기회가 오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복권 당첨을 꿈꾸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내가 아는 한 기회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현재에 발판을 닦지 않는 한 기회는 오지 않는다. 아니, 설령 온다해도 그것이 기회인 줄 모르고 놓쳐 버릴 것이다.

 

나는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의미없이 시간을 공유하는 일은 서로에게 묶이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세계를 무대로 꿈을 키워라.

 

외국에서라면 그런 제약 없이 내 능력을 그대로 평가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고, 그 점이 내가 도전할 수있는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나는 이땅에서 하나의 잣대로만 평가되어지는 젊은이들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들에겐 수많은 가능성이 있고 꿈과 미래가 있다. 자신을 평가절하시킨 사회에서, 원치도 않는 나머지의 자리를 충실히 지키고 있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주인이 되라고 말하고 싶다.

 

현명함과 똑똑함의 차이

스물 세 살! 무언가 새로운 꿈을 꾸기에는 부담스러우면서도 그렇다고 현재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기에도 미련이 남는 나이이다.

 가끔 나는 현명하다는 것과 똑똑하다는 것의 차이점에 대해서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은 똑똑하기는 하나 연명하지 않다는 정의를 내린다. 내가 아는 똑똑함은 머리이고 현명함은 지혜이다. 만약 내가 현명했더라면 처음부터 무모하고 보장되지 않은 떠돌이 생활은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현명하다는 것과 똑똑하다는 것에는 아주 큰 차이점이 있다. 현명한 사람은 투자와 결과의 손익 계산서로 움직이기 때문에 험난한 인생으로 말려들어 가지 않는다. 또한 무리하게 일을 진행시키지도 않는다. 반면 똑똑한 사람은 목표 지점을 향해 가는 길을 잘 찾아낸다. 그리고 그 결과만을 보고 간다. 어디쯤에서 멈춰야 하는지도 모른 채 계속 앞만 보고 가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보다 인생이 고달파 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이 똑똑한 사람인지 현명한 사람인지 아직도 잘 파악이 되지 않는다면, 지금쯤 스스로를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

 자신은 남과의 비교에 민감한 사람인가? 또한 순간순간 자신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인가? 적어도 항상 중간 이상은 되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현명한 사람이다.

 만약 당신이 무모하고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할 배짱이 있거나, 그래서 한 번이라도 다수의 가치관이나 판단에 어긋나 본 적이 있음에도 어찌됐든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는다면 당신은 똑똑할 가능성이 높다.

 만일 자신이 현명한 사람에 가깝다면 일단 아무데라도 취직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므로 자신의 성향인 장기적인 계획과 현실적인 계산서에 맞춰 볼 때 조금 늦게 가더라도 지금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좋다. 인턴이라도 지원하라. 다른사람들보다 조금씩이라도 나아갈 테니까. 그러면서 경력 사원이 되는 것이다.

 현명한 당신은 결코 화려한 출발 따위를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평범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하다. 비교라는 것은 끝이 없다. 자신의 비교대상을 엉뚱한 곳에서 찾게 된다면 그건 정말 곤란한 일이다.

 이제 문자아들만 남았다. 아직도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믿고 자신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은 사람들 말이다. 아직은 증명해 보이지 못한 자신을 믿는 살마들. 현명하기보다는 똑똑함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소위 야망이 있다거나 욕심이 큰 사람들. 내가 꼭 그부류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생고생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대는 새로워야 한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고 새롭게 도전하자

 

어설픈 배경을 버려라.

크든 작든 도전의 시작은 스스로를 벼랑으로 몰아넣을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사람은 누구나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서 닥치면 다 해낸다. 그 극단의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자신을 극단으로 몰고 갈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을 확인해 볼 기회란 영원히 없다.

어설픈 배경은 버려야 한다. 평생을 버틸 재산이 있지 않다면 없는 것이 낫다. 학벌이라는 것도 방패가 되어주지는 못한다. 어설픈 재능이나 취미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어설픈 기반에 그만 발목을 잡히고 만다.

 

머리로 판단하기 전에 몸부터 움직여라.

가끔, 당장 결과가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쌓아 가는 것이 멀리 갈 수 있는 자세이다. 설사 그것이, 내가 아직은 확신할 수 없고, 결국은 내가 갈 수 없는 곳이 된다 할지라도 그 노력에 대해서만큼은 어떤식의 대가라도 주어진다는 것이 내가 이십대를 보내며 깨달은 점이다.

 

꿈을 향한 자신의 출발은 남들과 달라야 한다. 나이에 맞는 꿈을, 상황에 맞는 꿈을, 남들이 알아주는 꿈을 꾸는 것은 자신이 꾸는 꿈이 아니다. 남들과 똑같은 모습으로는 나의 꿈을 이룰 수 없다. 특별히 잘난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다면 어디서부터 출발할 것인가? 나는 자신만의 특별한 꿈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남들과 다른 꿈을 꾸고 그것을 지켜 나가는 것이 나를 남과 다르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똑같은 목표를 갖고 고만고만한 능력으로 모두가 덤비는 세상에서, 별반 다를 게 없는 당신까지 가세하여 무얼 얻겠다는 것인가.

 각도를 조금만 틀어 세상을 보라. 세상에는 그 끝없이 길기만 한 줄 끝에 서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음이 보이지 않는가.


경쟁력은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

증명되지 않은 경쟁력은 자기 위안이고 허상일 뿐이다.

나는 내 능력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욕심 많고 결점 많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당신은, 지금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이유가 분명히 있는가? 기껏해야 '이런거나 하고 있을 내가 아니지만 잠시 동안 하고 있을 뿐이야.' 라는 것이 이유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것이 제일 한심한 이유이다. 그것은 회피의 이유이지 발전의 이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당신은 적당히 시간을 때우고 술이나 먹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일단 최고가 되겠다는 자세로 그 일에 임한다면 분명히 또 다른 기회로 연결된다. 그것이 사람 사는 이치이다. 그렇게 때문에 눈앞의 이익을 떠나 항상 길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 언제 어떤 일이 요구될른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늘 긴장해야 한다.

 만약 지금 당신의 24시간 중에 적당히 하는 자세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외국에 나가 기회를 잡겠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낫다. 함부로 무대에 서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단언하건대 그 사람을 위한 무대는 펼쳐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항상 나 자신에게 다짐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 인생의 음지는 내가 정한다는 것이다. 그 장소와 시간도 내가 정한다. 나는 계획된 때에 초라해질 것이고, 의도한 때에 무대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내가 정한 때에 내려올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인생은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어두운 때가 있고, 빛나는 때가 있다. 절망도 있고, 행복도 있다. 주연일 때도 있고 엑스트라일 때도 있다. 나의 절망은 외부의 환경이나 타인에 의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런 것에 의한 절망은 힘든 것을 넘어서 비참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므로 나의 행복 또한 살다 보니 좋은 날도 있네, 하는 식이어서는 절대 안된다. 그러한 행복은 시한부일 뿐이다.

 

목표가 분명한 투자

멀리 떨어져서 그 무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가서 그 무대를 직접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목표를 다지고 수단을 강구할 수 있다. 많이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많이 보는 것이다 . 직접 보고 느낀 것들만이 자신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다.

 

 목표와 수단이 정해지면 그 다음은 미련함이다. 목표를 향해 가는 미련함.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는 단호한 미련함. 섣부른 판단이나 남들과의 비교는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의심케 하고 스스로를 지치게 할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과 나를 너무 많이 비교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아킬레스건이다.

 빈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차라리 꿈을 꾸라고 말하고 싶다. 크고 원대한 꿈이 오히려 자기 자신을 더 크게 만든다. 그릇의 크기는 자기 스스로 규정짓는 것! 미리부터 자신의 한계를 그어놓지 말기 바란다.

 

'이건 내게 있어 기회야! 이 한 큐에 내 삶을 다른 색깔로 바꿔 버리겠어!'

 꿈꾸는 자들이여 떠나라! 당신이 도전해야 할 곳은 더 큰 세상이다. 미래가 그대 것일진저!

 

 

나는 몸이 불편하거나 마음이 자유로워지면, 혹시 내가 가야 할 길을 잃은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항상 데드라인에 쫓기듯 살아온 날들을 생각하면 요즘의 하루하루는 나를 움츠러들게 한다. 나는 안다. 지금의 행복은 내 것이 아니란 것을. 나는 아직 이런 행복에 만족할 만큼 지치지 않았다.

 내 나이 서른. 나는 또다시 나를 내몰 궁리를 한다. 아마 이것이 마지막 시도가 될 것 같다.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도전. 이제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여유는 여기까지다. 나는 극단의 결과만을 남겨놓게 되었다. 만약 실패한다면, 존재의 껍데기를 안고 살아가야 할 남은 인생이 무거울 것이다.

 

나를 자극하는 자존심

 세상이 무섭다는 것을 처음으로 안 것은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나서였다. 나는 그때 세상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구나 하고 느꼈었다.  그 후 책을 놓았다. 책은 나에게 마주할 수 없는 상처였다. 

'이방인'을 탐곡하고 쇼펜하우어를 좇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던 내게 닥친 현실은 가혹했다. 그곳에서 초라한 내 현실과 부딪혔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속한 현실에서는 내 삶을 붙잡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놓았다. 갇혀진 내 안에서만 진보하는 정신과, 현실 세계에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부조화 속에서 심하게 삐걱거렸다.

 나는 무능력한 나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자괴감도 느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이 내게 가장 큰 동기를 부여하고 오기를 심어 주었다.

 나는 표출 욕구가 강하다. 어쩌면 보상 심리 일 수도 있다. 추방당한 세계에 대한 보상을, 추방했던 현실에서 완벽하게 누리고 싶어하는.......

 나는 항상 눈에 보이는 자극을 좇는다.

혹자는 계속적인 자극에 무뎌질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무뎌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주 잘 나가는 경쟁자를 보면 지레 질려 포기하게도 되련만 나는 그렇게 되지를 않는다. 나는 남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내가 처지면 자존심이 상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내 자존심과 오기 덕에 끊임없이 자극을 받는다.

 이 땅에서, 세뇌받은 행복을 스스로의 것이라 믿고 달려가다가 후회와 미련을 안고 사는 것보다는, 조금 늦게 가더라도 자신의 삶을 개척해 볼 시간과 공간을 스스로에게 주어 보는 것은 어떨까? 무엇이 그렇게 급한가? 사실 돌아보면 자신의 인생이 그렇게 위기와 다급함을 느끼며 달릴정도는 아니지 않았는가. 만약 내가 쉬어 가는 법을 몰랐다면 앞서 가는 법도 몰랐을 것이다. 담금질할 줄 아는 사람이 스스로를 화려하게 즐길줄도 아는 법이다.

 

내가 계속 갈 수 있는 것, 아직도 진행형일 수 있는 그 뿌리는 내가 나 자신의 한계를 짓지 않기 때문이다. 내 한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내 꿈을 규정 짓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꿈을 구체적으로 이루고, 그래서 행복하고, 그러고 나면 그 뒤엔 무엇이 남는 것일까. 그 후론 행복하게 살았노라? 헤피 엔드?

 나는 목표 지향적인 사람으로 타고났다. 눈앞의 산은 꼭 넘고야마는 집요함이 나를 힘들게 하지만 그것이 나를 이곳까지 오게 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나의 유치한 꿈을 포장하고 싶지도 않고, 꿈을 목표로 바꾸고 싶지도 않다. 현재는 내 의지대로 단계적으로 이루어가고 있지만, 꿈은 그대로 남겨 두고 싶다. 내가 다시 떠난다면 이제는 어린 시절 내가 동경했던 공간에서 가장 작고 평범한 존재로 떠돌고 싶다.

 하버드가 나의 마지막 시도가 될 것이라고 한 것은 내가 돌아가고 시피은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순간들을 채우느라 너무나 전투적이 되어 버린 내게, 쉴 수 있는 어릴 적 향수와 꿈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하버드다. 물론 하버드가 누구에게나 그런 공간은 아니다. 공간에 대한 의미는 일반 사람들이 규정 짓는 실체와는 다르다. 개인만의 기억이 만들어 내는 의미이기 때문이다ㅏ.

 하버드는 하나의 이름일 뿐이다. 그리고 그 안을 채워 나가는 것은 내 자신이다. 굳이 왜 하버드냐고 사람들은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그곳은 내가 최초로 동경한 공간이고, 내 유치함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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